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빅토리아 여왕 (문단 편집) === 외모지상주의 === [[얼빠|외모지상주의자]]로 유명하다.[* 사실 이런 성격은 그 당시 여성, 그것도 군주에게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였다. 왜냐하면 그 당시 왕족, 귀족들은 배우자의 외모와는 전혀 상관 없이 혼인을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.] 남편 [[앨버트 공]]의 외모에 반해 사랑에 빠진 것은 유명하고 미인으로 유명한 증손녀인 [[바텐베르크의 앨리스 공녀]][* 외손녀 [[헤센의 빅토리아]](차녀 [[영국의 앨리스|앨리스 공주]]의 장녀)의 장녀이자 [[엘리자베스 2세]]의 남편 [[필립 마운트배튼|필립 공]]의 어머니이다.]를 '''우리 예쁜 앨리스'''라고 부르며 매우 아꼈다고 한다. 앨리스는 여왕의 손자인 [[조지 5세]]의 결혼식 때 신부 들러리를 섰는데 여왕이 직접 들러리로 앨리스를 지목한 것이라고 한다. 당시 일기장에 여왕은 앨리스가 아주 예뻤다고 적어놓았다. [[프랑스 제2제국|프랑스]] [[황제]] [[나폴레옹 3세]]를 남편 엘버트 공 다음으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평한 바 있다. [[파일:빅토리아 여왕과 알렉산드르 2세(1839).jpg]] 1839년 봄에는 [[러시아 제국|러시아]]의 [[체사레비치]] [[알렉산드르 2세|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]]를 만나서 함께 춤을 춘 적도 있었다.[* 두 사람은 7촌이다.]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일기에 '알렉산드르는 굉장히 매력적인 남자였으며, 그와 함께 한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.'고 서술했다.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호감을 느꼈지만 국가적으로 볼 때 두 사람의 결혼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.[* 알렉산드르의 아버지 [[니콜라이 1세]]는 '''"황후감이 필요하지 여왕의 남편이 될 필요는 없다."'''며 반대했다.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던 니콜라이의 입장에서 영국이 계속 시비걸고 방해했기 때문에 당연히 영국을 싫어했다.] 설령 이루어지더라도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은 서로 세계의 패권을 두고 싸우는 사이였으며, 이는 양국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정리했다.[* 이렇게 썸을 탔던 두 사람은 나중에 2대에 걸쳐서 사돈이 된다. 알렉산드르 2세의 딸 [[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|마리야]]와 빅토리아 여왕의 차남 [[알프레트(작센코부르크고타)|알프레드 왕자]]가 결혼했고, 알렉산드르의 친손자 [[니콜라이 2세]]와 빅토리아의 외손녀 [[헤센의 알릭스]]가 결혼했고, 알렉산드르의 친손자인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과 빅토리아의 친손녀 [[빅토리아 멜리타]]가 결혼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